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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는 왜 계속되는가

숨쉬는 개발자 2026. 6. 11.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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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학교폭력 · 방관자 · 한국 사회

학교폭력 뉴스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 있다.

중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아이다. 이름은 굳이 적지 않겠다.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었다. 말투가 조금 어눌했고, 반응이 반 박자 느렸고,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아이의 책상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고, 그 아이가 말을 걸면 다들 못 들은 척했고, 점심시간이 되면 그 아이는 혼자였다.

괴롭히는 애들은 두세 명이었다. 반은 서른 명이 넘었다. 그러니까 스물 몇 명은 나처럼 그냥 보고만 있었다는 얘기다. 나는 그 아이를 때린 적도, 놀린 적도 없다. 그 사실로 꽤 오랫동안 스스로를 변호해왔다. 하지만 솔직해지자면, 나는 알고 있었다. 내 침묵도 그 풍경의 일부였다는 걸.

시대가 이렇게 변했는데도 학교폭력 뉴스는 사라지지 않는다. CCTV가 생기고, 학폭위가 생기고, 익명 신고 앱까지 나왔는데도. 교실에서 단톡방으로, 단톡방에서 익명 커뮤니티로 무대만 옮겨갔을 뿐이다. 그 뉴스들을 볼 때마다 나는 같은 질문으로 돌아온다. 가해자는 언제나 소수인데, 다수는 왜 침묵하는가. 그때의 나는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가.

그때의 나는 계산하고 있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인정하게 된 게 있다. 그때 내 침묵은 비겁함이라기보다 계산이었다.

그 아이 편에 서는 순간 치러야 할 비용을, 열네 살의 나는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다음 타깃이 될 수도 있다는 것. 무리에서 밀려날 수도 있다는 것. “쟤 왜 나서?”라는 시선을 받게 된다는 것. 반대로 침묵의 비용은 거의 없었다. 양심이 조금 불편한 정도. 그리고 그 불편함은 “내가 때린 것도 아닌데”라는 말로 그럭저럭 덮을 수 있었다.

심리학에 방관자 효과라는 말이 있다는 건 한참 뒤에 알았다. 지켜보는 사람이 많을수록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하겠지”라며 책임이 분산된다는 것. 1964년 미국에서 키티 제노비스라는 여성이 살해당할 때 목격자 38명 중 아무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그 유명한 사건. 그 이야기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미국의 어느 골목이 아니라 우리 반 교실을 떠올렸다. 서른 명의 목격자. 그 많은 눈이 오히려 모두를 무책임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방관자 효과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게 있다. 그건 만국 공통의 심리인데, 우리 교실의 침묵에는 뭔가 더 한국적인 것이 작동하고 있었다.

“괜히 나서지 마라” — 나는 그렇게 배웠다

언젠가 집에서 반에 그런 애가 있다는 얘기를 흘리듯 한 적이 있다. 돌아온 말은 지금도 기억난다.

“너는 끼어들지 마라. 괜히 휘말리면 너만 손해다.”

나를 아끼니까 한 말이라는 걸 안다. 그 시절 어느 집이나 비슷한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면, 그 현실적인 조언이야말로 방관을 가정에서부터 가르치는 교육이었다. 정의감은 대학 가서, 취직하고 나서, 자리 잡고 나서로 무한히 미뤄도 되는 사치품이라고. 나는 그렇게 배웠고, 아마 그 말을 한 어른도 그렇게 배웠을 것이다. 방관은 이렇게 세습된다.

학교는 그 교육이 완성되는 곳이었다. 우리는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시간표대로 움직이며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렸다. 그 동질성의 공간에서 ‘다름’은 개성이 아니라 결함이었다. 그 아이의 죄목이 뭐였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어이가 없다. 말투가 어눌하다는 것. 평균에서 벗어났다는 것. 그게 전부였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을 나는 오랫동안 처세의 지혜인 줄 알았다. 지금은 다르게 읽힌다. 그건 지혜가 아니라 이 사회의 작동 원리에 대한 묘사다. 그리고 그 원리 아래에서는 피해자 편에 서는 것 자체가 ‘모난 행동’이 된다. 정의로운 행동조차 평균에서 벗어나는 순간 처벌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배웠다. 눈에 띄지 말 것. 그리고 눈에 띈 아이 옆에 서지 말 것.

폭력이 폭력으로 보이지 않게 되는 순간

더 무서운 걸 하나 고백하자면,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 풍경이 이상하게 보이지도 않았다.

학기 초에는 분명 불편했다. 그런데 한 학기가 지나자 그건 그냥 ‘우리 반의 일상’이 되어 있었다. “쟤는 원래 그런 애야.” 누가 처음 한 말인지도 모를 그 문장이 모든 걸 설명해줬다. 서열이 한번 굳어지면 폭력은 폭력으로 보이지 않는다. 질서로 보인다. 방관자는 폭력을 목격하고 있는 게 아니라 그냥 교실의 평범한 하루를 보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군대에 가서 나는 똑같은 구조를 다시 만났다. 직장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부조리, 직장 내 괴롭힘, 간호사들 사회의 ‘태움’ 같은 단어들. 무대와 등장인물만 바뀌었을 뿐, 서열의 맨 아래를 향한 폭력이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굴러가는 구조는 똑같았다. 그제야 알았다. 학교의 왕따는 한국 사회 서열 문화의 예고편이었다는 걸. 우리는 그 교실에서 평생 쓸 생존 기술을 익히고 있었던 것이다. 위에는 복종하고, 아래의 고통에는 둔감해지기.

“신고하면 되잖아”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꼭 묻는 사람이 있다. 신고하면 되지 않느냐고.

우리 때도 신고한 아이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지 아는가. 담임은 양쪽을 불러 악수를 시켰고, 가해자들은 그날 오후부터 ‘고자질’에 대한 응징을 시작했다. 그 장면을 본 우리들이 뭘 학습했겠는가. 신고는 위험하기만 하고 효과는 없다는 것.

지금이라고 크게 다른지 모르겠다. 학교는 학폭 건수가 실적에 불리하니 축소하려는 유인이 있고, 학폭위 처분은 가볍고, 가해자 부모가 행정소송으로 시간을 끄는 동안 두 아이는 같은 교실에 앉아 있다. 결국 전학 가는 쪽은 피해자인 경우가 흔하다. 몇 년 전 운동선수와 연예인들의 ‘학폭 미투’가 줄줄이 터졌을 때, 나는 그 폭로들이 10년, 20년 묵은 것이라는 사실이 제일 아팠다. 그들이 학창 시절에 기댈 수 있는 창구가 사실상 없었다는 뜻이니까.

아이들의 침묵은 시스템에 대한 불신의 결과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그 불신에는 근거가 있다.

어른이었다면 전과가 남았을 일

회사를 다니면서 가끔 섬뜩한 상상을 한다. 그때 그 교실에서 벌어지던 일들이 지금 내 사무실에서 그대로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동료를 둘러싸고 조롱하면 모욕죄다. 밀치고 때리면 폭행죄, 다치게 하면 상해죄다. 돈을 뜯으면 공갈이고, 단톡방에서 험담을 퍼뜨리면 명예훼손이다. 어른의 세계에서 그것들은 전부 전과가 남는 범죄다. 경찰이 오고, 재판을 받고, 인생에 기록이 남는다.

그런데 똑같은 행위가 교문 안에서 일어나면 이름이 바뀐다. ‘학교폭력’. 범죄가 아니라 ‘학생 지도의 문제’가 된다. 처분은 서면 사과, 교내 봉사, 길어야 출석 정지. 만 14세 미만이면 촉법소년이라 형사처벌 자체가 불가능하고, 그 위라도 소년법이 막아준다.

아이들이 이걸 모를 거라고 생각하면 순진한 것이다. “나 촉법이라 괜찮은데요?” 경찰서에서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 이야기가 뉴스에 나오는 시대다. 우리 때도 가해자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교사 앞에서까지만 조심하면 된다는 것, 일이 커져봐야 반성문이라는 것. 처벌의 공백은 정확하게 학습되고, 정확하게 이용된다.

소년법의 취지를 모르는 게 아니다. 아이는 어른보다 교화 가능성이 크고, 한 번의 잘못으로 인생 전체에 낙인을 찍는 건 또 다른 폭력일 수 있다. 그 말에 일부분 동의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현실은 이상하다. 처벌을 면제해주는 대신 약속됐던 교화는 어디서 이뤄지고 있는가. 강제 전학 간 가해자는 새 학교에서 같은 일을 반복하고, 보호처분은 며칠짜리 교육으로 끝난다. 처벌도 없고 교화도 없는, 면죄부만 남은 시스템.

그래서 이 질문을 피할 수가 없다. 폭력을 ‘비용 없는 행위’로 학습한 아이를, 우리는 그대로 사회에 내보내도 되는가. 학폭 미투가 답의 일부를 보여줬다. 아무 기록도 책임도 없이 사회에 나간 가해자들은 운동선수가 되고 연예인이 되어 있었다. 그들의 폭력을 기억하는 건 피해자뿐이었다. 가해자는 잊고 출세하고, 피해자는 기억하고 무너지는 것. 그게 우리가 만든 시스템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이 공백은 방관자의 계산에도 들어간다. 신고해봤자 가해자가 멀쩡히 교실로 돌아온다는 걸 아이들은 안다. 처벌받지 않는 폭력 앞에서 침묵은 더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용기가 덜 필요한 구조를 만드는 일

그 아이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사는지 나는 모른다. 잘 살고 있기를 바란다는 말조차 염치없게 느껴질 때가 있다.

다만 어른이 된 지금, 그때의 나 같은 아이들에게 “용기를 내라”고 말하는 건 무책임하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겠다. 열네 살의 나는 용기가 없었던 게 아니라, 용기의 값이 너무 비싼 교실에 앉아 있었다. 왕따를 가해자 개인의 인성 문제로 보는 한 답은 없다. 가해자를 골라내 처벌해도 구조가 그대로면 다음 가해자가 그 자리를 채운다. 바꿔야 하는 건 다수, 그러니까 방관자의 계산식이다.

핀란드의 키바 코울루(KiVa)라는 학교폭력 프로그램이 효과를 봤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인상적이었던 건 그 프로그램의 초점이 가해자 처벌이 아니라 방관자 교육이라는 점이었다. “지켜보는 너도 이 상황의 일부”라는 메시지, 그리고 익명으로 안전하게 개입할 수 있는 통로. 침묵의 비용은 올리고 개입의 비용은 낮추는 것. 열네 살의 나에게 필요했던 게 정확히 그것이었다.

그리고 신고가 작동한다는 증거를 아이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시스템이 한 번 제대로 작동하는 모습이 백 번의 캠페인보다 강하다. 악수시키고 끝내는 담임을 본 아이와, 가해자가 분리되는 걸 본 아이는 다음 사건 앞에서 다르게 행동한다. 그 작동에는 가해의 비용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교화는 처벌의 면제가 아니라, 자기 행동의 무게를 배우는 과정 위에서만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어른들의 세계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회사에서 괴롭힘을 보고도 고개 숙이는 어른이 집에 와서 “친구를 도와줘야지”라고 말하는 건 공허하다. 아이들은 어른의 말이 아니라 어른의 계산을 배운다. 내가 그 계산을 집에서 배웠던 것처럼.

맺으며

왕따가 계속되는 이유는 가해자가 강해서가 아니다. 다수의 침묵이 합리적인 선택이 되는 구조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가해자는 언제나 소수다. 침묵하던 다수가 입을 여는 순간 판은 뒤집힌다.

문제는 그 ‘입을 여는 비용’을 지금까지 전부 개인의 용기에 떠넘겨왔다는 것이다. 나는 그 비용 앞에서 침묵을 골랐던 사람으로서, 아이들에게 용기를 요구하기 전에 용기가 덜 필요한 구조를 만드는 게 어른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그 아이에게 끝내 아무 말도 건네지 못했던 내가, 이제 와서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말이다.